박재삼(1933-1997)은 경남 진주 출신의 시인으로, 한국전쟁 이후 순수시의 대표적 인물입니다. 1955년 「새벽」으로 등단한 후, 민족 정서와 토속적 언어를 바탕으로 한 서정시를 통해 한국인의 애환과 삶의 정서를 섬세하게 담아냈습니다.
1. 어린 시절과 성장 배경: 남도의 정서를 품다
박재삼은 1933년 3월 20일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고향인 진주는 남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도시로, 그의 시세계 형성에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남강의 풍경과 진주의 자연환경은 후에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박재삼은 한국의 전통적인 농촌 문화와 정서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그의 집안은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문학과 예술에 대한 관심이 깊었던 가정환경 속에서 자랐습니다. 특히 그의 어머니는 민요를 즐겨 부르던 분으로, 이러한 가정 환경이 그의 시에 나타나는 토속적 정서와 리듬감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1945년 해방을 맞이했을 때 박재삼은 열두 살의 소년이었습니다. 식민지 시대의 끝과 해방의 기쁨, 그리고 곧이어 찾아온 한국전쟁의 비극은 그의 감수성에 깊은 상처와 함께 민족적 정서에 대한 깊은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2. 문학적 성장과 등단: 시인의 길로 들어서다
박재삼은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52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대학 시절 그는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문학에 대한 열정을 키워갔으며, 대학 문학 동아리 활동을 통해 창작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55년, 그는 시 「새벽」으로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정식으로 등단하게 됩니다. 이 시기는 한국전쟁의 상처가 아직 생생하던 때로, 많은 문인들이 전쟁의 참상과 민족의 비극을 작품에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재삼은 직접적인 이념이나 정치적 메시지보다는, 서정적이고 토속적인 언어를 통해 민족의 정서와 삶의 진실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자신의 문학적 길을 찾아갔습니다.
1957년 그의 첫 시집 『강』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시집에서 그는 자신의 고향인 진주의 남강을 중심으로 한 자연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민족의 한과 정서를 서정적으로 노래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시적 경향은 이후 그의 작품 세계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이 되었습니다.
2.1 연애와 결혼: 시인의 개인적 삶
박재삼의 연애와 결혼 생활에 대한 기록은 그의 문학적 업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는 사생활에 대해 비교적 조용히 지내는 편이었습니다.
대학 시절 그는 동료 학생들과 문학적 교류를 가지며 지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배우자를 만났습니다. 1960년대 초반, 그는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그의 문학 활동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든든한 후원자였습니다.
결혼 후 박재삼은 가정생활과 문학 활동을 병행하며 안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직접적으로 가족이나 결혼 생활에 대한 내용이 많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의 서정적인 시세계 형성에 가정의 안정감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자녀들과도 화목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가족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강한 시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시적 주제는 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 민족의 정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 등에 집중되어 있어, 개인적인 가족사나 연애 경험이 시에 직접적으로 많이 반영되지는 않았습니다.
3. 시대별 작품 세계: 민족 정서의 깊이를 더해가다
3.1. 1950년대: 등단과 초기 시세계
박재삼의 1950년대 작품은 한국전쟁 직후의 혼란과 상처를 배경으로, 민족의 비극적 현실을 서정적 언어로 승화시키는 특징을 보입니다. 첫 시집 『강』(1957)에 수록된 작품들은 남강을 중심으로 한 고향의 풍경과 정서를 담고 있으며, 이 시기 그의 대표작으로는 「울음이 타는 가을 강」, 「그 겨울의 화엄경」, 「도시」 등이 있습니다.
이 시기 그의 시는 전통적인 서정시의 형식 속에서 한국적 정서와 언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히 자연의 이미지와 토속적 언어의 사용은 그의 시적 개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3.2. 1960년대: 시적 성숙기
1960년대는 박재삼의 시적 성숙기로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시집 『춘향이 놀던 터』(1965)와 세 번째 시집 『천년의 바람』(1968)을 통해 그는 더욱 깊어진 민족 정서와 확장된 시적 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시기 그의 작품에는 「천년의 바람」, 「갈대」, 「추억에서」, 「흰 그림자」 등이 있으며, 이전 시기보다 더욱 심화된 서정성과 함께 한국인의 집단적 무의식과 역사적 체험을 탐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특히 「천년의 바람」은 민족의 역사와 정서를 시간을 초월하는 바람의 이미지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그의 시세계가 개인적 서정에서 집단적·역사적 서정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3.3. 1970-80년대: 심화된 민족 정서와 철학적 사유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박재삼은 『천년의 바람』(1973), 『밝은 밤』(1976), 『대설주의보』(1983), 『떠다니는 풀잎』(1985) 등의 시집을 발표하며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이 시기 그의 시는 더욱 깊은 철학적 사유와 함께 민족의 역사와 정서를 더욱 깊이 있게 탐구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대표작으로는 「대설주의보」, 「견우의 노래」, 「밝은 밤」 등이 있으며, 이전보다 더 응축된 언어와 깊이 있는 상징을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문제를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3.4. 1990년대: 생의 마지막 시기와 후기 시세계
1990년대는 박재삼의 생애 마지막 시기로, 그는 이 시기에도 『겨울에도 피는 꽃』(1992), 『물의 시간』(1997) 등의 시집을 발표하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의 후기 시에는 죽음에 대한 성찰과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영속성에 대한 사유가 더욱 깊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시적 언어는 더욱 간결하고 투명해지는 특징을 보입니다.
1997년 1월 3일, 박재삼은 6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마지막 시집 『물의 시간』은 그가 세상을 떠난 해에 출간되어, 그의 시적 여정의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4. 박재삼이 살았던 시대의 사회·정치·문화적 환경
4.1. 한국전쟁과 전후 복구기(1950년대)
박재삼이 등단한 1950년대는 한국전쟁(1950-1953)의 상처가 아직 생생한 시기였습니다. 전쟁은 국토를 폐허로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잃거나 이산가족이 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은 당시 문학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작가들은 전쟁의 비극과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문제에 대해 탐구하게 되었습니다. 박재삼 역시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민족의 비극적 현실을 서정적 언어로 승화시키는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 문학계에서는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의 대립이 본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작가들은 문학의 사회적 책임과 참여를 강조했고, 다른 작가들은 문학의 순수성과 예술성을 중시했습니다. 박재삼은 이념적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서정적 언어를 통해 민족의 정서와 삶의 진실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자신의 문학적 길을 찾아갔습니다.
4.2. 4.19혁명과 5.16 군사정변(1960년대)
1960년대는 한국 사회가 큰 변화를 겪던 시기였습니다.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졌고,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박정희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정치적 격변과 함께 한국 사회는 본격적인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문학계에서는 4.19혁명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움직임과 함께, 급속한 사회 변화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과 전통적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이 공존했습니다. 박재삼은 후자의 흐름 속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한국의 전통적 정서와 미의식을 자신의 시를 통해 지켜나가려 했습니다.
또한 1960년대는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과의 교류를 확대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서구의 현대 문학 이론과 기법이 활발히 소개되었고, 많은 작가들이 이러한 영향 속에서 새로운 문학적 실험을 시도했습니다. 박재삼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한국적 서정과 토속적 언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자신만의 시세계를 굳건히 지켜나갔습니다.
4.3. 개발독재와 민주화 운동(1970-80년대)
1970년대와 80년대는 한국 사회가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는 한편, 정치적으로는 유신체제와 군사독재로 인한 억압과 이에 대항하는 민주화 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기였습니다.
문학계에서도 민중문학, 참여문학의 흐름이 강화되어 문학의 사회적 책임과 현실 참여를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졌습니다. 반면에 순수문학의 전통을 이어가는 작가들도 꾸준히 활동하며 문학의 다양성을 유지했습니다.
박재삼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직접적인 정치적 메시지보다는, 민족의 정서와 역사적 경험을 서정적 언어로 승화시키는 자신만의 문학적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의 시는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한국인의 영혼과 정신적 뿌리를 지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4.4. 민주화와 세계화(1990년대)
1990년대는 한국 사회가 민주화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큰 변화를 겪던 시기였습니다.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시작했고, 1990년대 들어 한국은 세계화 시대에 본격적으로 진입했습니다.
문학계에서도 다양한 실험과 시도가 이루어졌으며,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등 새로운 문학적 경향이 등장했습니다. 또한 세계화와 함께 한국 문학의 국제적 교류도 활발해졌습니다.
박재삼은 이러한 변화의 시대에도 자신만의 시세계를 지키며 창작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의 후기 시에는 특히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영속성에 대한 사유가 더욱 깊어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는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문제에 대한 그의 관심을 보여줍니다.
5.「울음이 타는 가을 강」: 연별 분석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은 박재삼의 대표작 중 하나로, 그의 첫 시집 『강』(1957)에 수록되었습니다. 이 시는 가을 강의 풍경을 배경으로 민족의 한과 애환을 서정적 언어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박재삼 시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각 연별로 자세히 분석해 보겠습니다.
1연: 가을 강의 풍경과 정서적 배경
첫 연은 가을 강의 풍경을 묘사하면서 시의 정서적 배경을 설정합니다. "가을 강 건너 저무는 햇살"은 시간적 배경이 저녁이며, 계절적으로는 가을임을 알려줍니다. 이는 무언가의 끝, 쇠퇴, 상실의 분위기를 암시합니다.
"징검다리를 건너 저물면"이라는 표현은 햇살이 마치 인격을 가진 존재처럼 강을 건너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는 자연과 인간을 동일시하는 박재삼 시의 특징적인 표현 방식입니다.
"젖먹이 던져 버린 어린 어미의 젖가슴처럼 / 강은 얕아지고"라는 비유는 매우 강렬하고 충격적입니다. 이는 생명을 낳고 기르는 모성의 상징인 젖가슴이 버려진 상태를 묘사함으로써, 생명력의 상실과 비극적 현실을 암시합니다. 또한 이 비유는 한국 전쟁 당시의 비극적 상황을 암시하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2연: 울음과 눈물의 이미지
2연에서는 "울음"이라는 단어가 반복되면서 시의 정서적 중심이 더욱 명확해집니다. "울음을 울음이라 못 부르는 세월"은 슬픔과 고통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억압된 시대 상황을 암시합니다. 이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친 한국인들의 집단적 트라우마를 반영합니다.
"젖가슴이 썩어들어 가는 이 사상"은 1연의 이미지를 이어받아, 생명력과 모성의 상징이 파괴되는 모습을 그립니다. 여기서 "사상"은 '생각'이라는 의미보다는 '상황' 또는 '실상'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언덕 너머로 세월은 넘어서 울음 울음 울음……"에서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울음이 계속되는 모습을 그립니다. 이는 역사적 비극이 시간 속에서 반복되는 모습을 암시합니다.
"가문 한여름을 살아온 벌레들이 서러워서 / 흐르는 별들과 밤 헤엄쳐 온다"는 가뭄의 고통을 겪은 작은 생명체들의 모습을 통해, 역사적 고난을 겪은 민족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합니다. 밤하늘의 별들과 함께 헤엄치는 이미지는 고통 속에서도 이어지는 생명력과 희망을 암시합니다.
3연: 한과 슬픔의 심화
3연에서는 제목과 같은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는 강물이 마치 불타오르듯 울음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을 그립니다. "타다"라는 동사는 강렬한 감정의 표현이자, 소멸과 정화의 이미지를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젖먹이 이미 돌아오지 않는 강가에"는 1연에서 언급된 이미지를 발전시킵니다. 이제 젖먹이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임이 확실해졌고, 이는 되돌릴 수 없는 상실과 비극을 의미합니다.
"어린 어미는 젖가슴을 움켜쥐고 / 거부기 소리로 울고 또 운다"는 극도의 슬픔과 고통을 표현합니다. "거부기 소리"는 토속적인 방언으로, 깊고 슬픈 울음소리를 의미합니다. 이는 박재삼 시의 특징인 토속적 언어의 사용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4연: 역사적 시간과 영원한 슬픔
마지막 연에서는 자연의 순환과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계속되는 울음과 슬픔의 이미지가 나타납니다. "새들은 울음을 주워 먹고"라는 표현은 자연마저도 슬픔을 먹고 살아가는 듯한 모습을 그립니다.
"발톱에 걸린 피를 강물에 씻고"는 폭력과 상처의 흔적이 있음을 암시하며, 이는 역사적 비극의 상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물에 씻는 행위는 정화와 치유의 가능성을 내포하기도 합니다.
"또 울음을 찾아 / 이 가을 저무는 강 언덕을 헤맨다"는 슬픔과 상실이 끝나지 않고 계속됨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헤맴 속에서도 생명은 계속되고, 역사는 흘러갑니다. 이는 비극적 현실 속에서도 이어지는 생명력과 역사적 흐름을 암시합니다.
전체적으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은 가을 강의 풍경을 배경으로, 민족의 한과 애환, 역사적 비극을 서정적 언어로 승화시킨 작품입니다. 특히 토속적 정서와 언어의 사용, 모성과 생명의 이미지, 자연과 인간의 합일적 시선 등은 박재삼 시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6. 박재삼의 문학적 가치와 후대에 미친 영향
6.1. 토속적 언어와 정서의 복원
박재삼의 가장 큰 문학적 공헌 중 하나는 한국의 토속적 언어와 정서를 현대시 속에 성공적으로 복원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표준어가 아닌 방언이나 고어(古語)를 과감하게 사용하여, 우리 언어의 풍부한 표현력과 정서적 깊이를 보여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거부기 소리" 같은 방언이나 "뻘밭", "개닦이" 등의 토속적 단어들은 표준어로는 담아낼 수 없는 독특한 정서와 리듬감을 전달합니다. 이러한 시도는 언어의 획일화와 표준화가 진행되던 시대에, 우리 언어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지켜내는 중요한 작업이었습니다.
박재삼의 이러한 노력은 후대 시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 토속적 언어와 정서를 현대시에 접목하는 시적 전통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6.2. 민족 정서의 서정적 승화
박재삼은 한국인의 집단적 경험과 정서, 특히 한과 애환을 서정적 언어로 승화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시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형성된 민족의 상처와 비극을 직접적인 정치적 메시지 없이, 서정적 언어와 이미지를 통해 승화시켰습니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개인적 서정을 넘어 민족의 집단적 정서를 표현하면서도, 결코 이념적 구호나 직접적인 사회 비판으로 흐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연과 일상의 이미지를 통해 민족의 정서를 섬세하게 포착했습니다.
이러한 시적 태도는 정치적 격변기에 문학이 취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입장을 보여주었으며, 순수시와 참여시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제3의 길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후대 시인들에게 민족의 역사적 경험을 어떻게 시적으로 승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모델이 되었습니다.
6.3. 자연과 인간의 합일적 세계관
박재삼 시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자연과 인간을 분리된 존재로 보지 않고, 서로 감응하고 소통하는 합일적 세계로 그려낸다는 점입니다. 그의 시에서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나 비유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정서와 역사를 함께 겪고 호흡하는 생명체처럼 그려집니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에서 강은 단순한 물길이 아니라 인간의 슬픔과 한을 함께 품고 울어주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러한 자연관은 한국의 전통적인 자연관과 연결되며, 근대화와 산업화로 인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단절되던 시대에 중요한 생태학적 통찰을 제공했습니다.
박재삼의 이러한 생태학적 상상력은 현대 사회에서 더욱 중요해진 환경 문제와 자연-인간 관계에 대한 성찰에 있어 선구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이는 후대 생태시인들에게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6.4. 형식적 완성도와 시적 언어의 정제
박재삼은 시의 형식적 완성도와 언어의 정제에 있어서도 탁월한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그의 시는 불필요한 수식이나 과장된 표현 없이, 간결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언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히 그는 한국어의 리듬감과 음악성을 살린 시적 언어를 구축했으며, 이는 한국 현대시의 언어적 가능성을 확장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울음 울음 울음……"과 같은 반복이나 "거부기 소리"와 같은 토속적 표현은 단순한 의미 전달을 넘어 소리로서의 시적 효과를 극대화합니다.
이러한 형식적 완성도는 후대 시인들에게 현대시의 언어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참조점이 되었습니다. 그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한국어 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모범으로 읽히고 있습니다.
7. 후대 시인들에게 미친 영향
박재삼의 시세계는 많은 후대 시인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그의 토속적 정서와 언어, 자연과 인간의 합일적 세계관, 민족 정서의 서정적 승화 방식은 한국 현대시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했습니다.
신경림, 황지우, 나희덕, 김기택 등 다양한 세대의 시인들이 박재삼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특히 1980년대 이후 민족문학과 생태시의 흐름 속에서 그의 시적 성취는 더욱 주목받았습니다.
또한 박재삼의 시는 한국어 교육과 문학 교육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의 많은 작품들이 교과서에 수록되어 세대를 넘어 읽히고 있으며, 한국인의 정서와 언어 감각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7.1.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서의 가치
박재삼의 시는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서도 큰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학술 논문과 연구서들이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으며, 한국 현대시사에서 그의 위치는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특히 그의 시에 나타난 모성 이미지, 토속적 언어의 활용, 한국적 서정의 특질, 전통과 현대의 접점 등 다양한 주제에 주목해왔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한국 문학의 정체성과 특수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박재삼의 시는 비교문학적 관점에서도 연구되고 있으며, 한국 문학의 세계화 과정에서 중요한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한국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과 정서를 담고 있으면서도, 인간 존재의 보편적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세계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론: 한국 시문학사에서의 박재삼의 위상
박재삼은 한국 현대시사에서 독특하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시인입니다. 그는 한국전쟁 이후의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이념이나 정치적 메시지에 치우치지 않고 민족의 정서와 영혼을 섬세하게 담아내는 시적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특히 그의 시는 토속적 언어와 정서의 복원, 민족 정서의 서정적 승화, 자연과 인간의 합일적 세계관, 형식적 완성도 등의 측면에서 탁월한 성취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시적 특징은 한국 현대시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했으며, 많은 후대 시인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박재삼의 대표작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한국인의 정서와 언어 감각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으며,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서도 큰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의 시는 특정 시대와 장소의 경험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인간 존재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박재삼이 노래한 민족의 정서와 역사적 경험,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성찰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따라서 박재삼은 단순히 과거의 시인이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는 살아있는 시인으로 평가받아 마땅합니다. 그의 시세계는 한국 문학의 소중한 자산이자, 세계 문학 속에서 한국 문학의 독특한 성취를 보여주는 중요한 표지입니다.
박재삼이 「울음이 타는 가을 강」에서 노래했던 그 깊고 서정적인 울음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마음속에 깊은 울림으로 남아있습니다. 그의 시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은, 역사적 상처와 비극 속에서도 아름다운 언어로 그것을 승화시킬 수 있는 인간 정신의 위대함일 것입니다.
박재삼 주요 작품 목록
시집
- 『강』(1957)
- 『춘향이 놀던 터』(1965)
- 『천년의 바람』(1968)
- 『천년의 바람』(1973, 개정판)
- 『밝은 밤』(1976)
- 『대설주의보』(1983)
- 『떠다니는 풀잎』(1985)
- 『겨울에도 피는 꽃』(1992)
- 『물의 시간』(1997)
주요 시
- 「울음이 타는 가을 강」
- 「그 겨울의 화엄경」
- 「도시」
- 「천년의 바람」
- 「갈대」
- 「추억에서」
- 「흰 그림자」
- 「대설주의보」
- 「견우의 노래」
- 「밝은 밤」
- 「초설」
- 「흰 그늘」
- 「물의 시간」
산문집
- 『어머니의 맨발』(1976)
- 『무지개 속의 집』(1985)
참고 문헌
- 김용직, 『한국현대시사』, 한국문화사, 2007.
- 오세영, 『박재삼 연구』, 민음사, 1999.
- 이숭원, 『박재삼 시의 서정적 특질』, 국학자료원, 2005.
- 정효구, 『한국 현대시인 연구: 박재삼론』, 문학과지성사, 2001.
- 김준오, 『한국 현대시의 언어와 이미지』,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
- 최동호, 『한국 현대시의 정서와 표현』, 고려대학교출판부, 2004.
- 박철화, 『한국 현대시와 민족 정서』, 소명출판, 2011.
- 이승하, 『박재삼 시의 모성 이미지 연구』, 한국시학연구, 2008.
- 김열규, 『박재삼과 한국의 토속적 서정』, 국어국문학, 1998.